Dissociating the role of the dorsolateral prefrontal and anterior cingulate cortex in cognitive control
Angus W. MacDonald III, Jonathan D. Cohen, V. Andrew Stenger, Cameron S. Carter
Science, 2000, v288, n9
* 인지 조절은 인간의 앎, 기억, 언어의 기능과 관계된 고차원적 사고 과정이다. 그리고 그만큼 복잡하여 아직 분명하게 기술된 바 없는 영역이다. 연구자들은 이에 대한 기초 작업의 일환으로 DLPFC(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와 ACC(Anterior Cingulate Cortex)가 인지 조절의 과정에서 어떠한 기능에 기여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 Stroop test : 인지 실험에 많이 쓰이는 이 테스트는 색과 단어를 말하게 하여 피험자의 반응을 보는 것이다. 이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조건을 달리하여 DLPFC와 ACC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확인하면 인지 조절에서 어떠한 측면이 DLPFC와 ACC와 관계가 되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 결과 -
* DLPFC에서는 control과 conflict가 부정적인 관계로 드러났으며, ACC에서는 긍정적인 관계로 나타났다. 즉, DLPFC에서는 갈등이 적게 일어나고 인지적 활동이 많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며, ACC에서는 갈등이 일어나는 것으로 인해 인지적 활동이 이끌어내어짐을 알 수 있다. 갈등과 조절이 부정적인 관계라는 것은 갈등이 적게 되면 본래 자신이 생각하던 것에 비추어 생각을 전개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갈등과 조절이 긍정적인 관계라는 것은 갈등을 통해서 현재 자신이 직면한 상황에 의존적이 되어서 자신의 판단에 갈등을 반영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을 정리하면 DLPFC에서 일어나는 인지 조절은 상의하달방식의 기능을 가지며, ACC의 경우에는 피드백의 기능을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함의 -
* DLPFC와 ACC는 각각 다른 인지 조절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DLPFC와 ACC의 활성 관계(독립적인 기능이 아닌)에 따라서 현재 피험자가 (Stroop test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어떠한 사고 과정을 진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좋게 말해서 인간의 사고를 이해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Tag : acc, Cognitive Control, DLPFC, 신경과학, 인지갈등
Tag : categorization, identification, 시각, 신경과학
인지갈등과 어려움을 다루기에 앞서서 앎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지갈등이라는 것은 자신이 구성하고 있는 지식 체계와 새로이 접하는 현상과의 불일치로서 설명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앎이라는 것은 주변의 환경에 대해서 이해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다고 한다면, 그 '무엇'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과 관계된 사건이나 인과관계에 대해서 짜임새있게 구성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구성은 자신의 의식으로도 가능하겠지만, 많은 부분이 무의식적으로 이뤄진다. 앞의 [2절]에서 언급한 사회구성주의적 특성을 앎과 연결해 본다면, 자신이 특정 내용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그에 대해서는 자신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미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비록 그렇게 알고 있는 앎이 실제의 앎과 다를지라도 자신의 일생에 있어서 경험한 것에 비추어 보게되면 매우 논리적인 구성인 경우가 많다. 이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논리적인 전개로 이뤄진 것이므로... 비록 그 앎이 잘못된 것일지라도)
이제 인지갈등(cognitive conflict)에 대해서 다뤄보자. 인지갈등은 자신이 현재 생각하고 있는 특정 대상에 대한 앎이 지각하고 있는 현상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한다고 본다. 이러한 인지갈등은 앎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지갈등을 경험하는 것은 뇌가 많이 성장하고 경험이 많으면 점점 강해진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장하면서 세계에 대한 뚜렷한 관점이 형성되며, 이 세계에 대한 인식론적, 존재론적 신념이 고착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와 현재 자신이 지각하고 있는 경험이 다르거나 설명하지 못하게 되면,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렇듯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보게 하는 동기는 바로 인지갈등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다.
[4절]에서 언급했듯이 뇌의 활동은 다양한 해부학적 기관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인지갈등을 지각하면, 그것은 단순하게 대뇌피질(정확하게는 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에서만 이뤄진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글에서 말하고자하는 어려움에 대한 관점이다. 어렵다는 것은 자신이 불일치 상황을 지각했거나, 그 이후 문제가 잘 풀어지지 않는 경우에 지각하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려움이라는 것은 감정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감정의 역할을 많이 담당하는 편도체에 DLPFC(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가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려움이라는 것은 인지갈등이 일어나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감정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DLPFC에서 편도체로만 신경 신호가 진행한다고 볼 수 없다. 해부학적으로 편도체가 포함된 변연계에서 대뇌피질에 이르는 신경다발은 대뇌에서 변연계로 뻗은 신경다발보다 굵다고 알려져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기본적인 생체적 기능으로부터 이성을 담당하는 대뇌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을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매우 감정적으로 격정적인 상태에서 우리가 논리적인 해석이나 차분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마치 매우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전개 같으나, 어딘가에 허점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뇌의 사고과정은 아직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 5절 -
사회적 동물
생각을 하는 존재(1절)로서 나는 외부의 자극에 영향을 받아 뇌의 어디선가 변화가 반드시 일어난다.
태아일 때 부터 뇌가 형성되면서 나의 감각 신경을 자극한 외부의 영향이 뇌를 형성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뇌가 생물학적으로 성장하면서 받은 자극에 의해 나의 지식이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로지 '나'라는 것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오로지 '나'라는 것은 순전히 외부에서 왔다. 그렇다면 고유체로서 '나'라는 것은 내가 성장한 주변 환경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타인에게 "너는 A도시의 B 학교야."라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처럼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겪은 모든 경험이 자극이 되어 사고를 형성한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그 사람이 처했던 상황에 그 사람의 성격이나 본질을 부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온전한 경험체이다.' 라는 것이 솔직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 근거를 둔다면 '내재적'이라는 말은 불가능한 표현이다. 나의 모든 것은 외부에서 왔기 때문이다.
관점을 돌려, 내재적인 사고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외부의 자극을 통해 형성한 사고가 무언가 미스테리한 과정을 거쳐 오로지 '나'라는 것으로 승화(!) 되었다고 해야하는가?
- 2 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