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두 부분의 기능적 분리에 대한 연구

Posted 2008/09/27 18:39 by Tricassia

Dissociating the role of the dorsolateral prefrontal and anterior cingulate cortex in cognitive control

Angus W. MacDonald III, Jonathan D. Cohen, V. Andrew Stenger, Cameron S. Carter

Science, 2000, v288, n9

* 인지 조절은 인간의 앎, 기억, 언어의 기능과 관계된 고차원적 사고 과정이다. 그리고 그만큼 복잡하여 아직 분명하게 기술된 바 없는 영역이다. 연구자들은 이에 대한 기초 작업의 일환으로 DLPFC(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와 ACC(Anterior Cingulate Cortex)가 인지 조절의 과정에서 어떠한 기능에 기여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 Stroop test : 인지 실험에 많이 쓰이는 이 테스트는 색과 단어를 말하게 하여 피험자의 반응을 보는 것이다. 이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조건을 달리하여 DLPFC와 ACC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확인하면 인지 조절에서 어떠한 측면이 DLPFC와 ACC와 관계가 되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 결과 -

* DLPFC에서는 control과 conflict가 부정적인 관계로 드러났으며, ACC에서는 긍정적인 관계로 나타났다. 즉, DLPFC에서는 갈등이 적게 일어나고 인지적 활동이 많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며, ACC에서는 갈등이 일어나는 것으로 인해 인지적 활동이 이끌어내어짐을 알 수 있다. 갈등과 조절이 부정적인 관계라는 것은 갈등이 적게 되면 본래 자신이 생각하던 것에 비추어 생각을 전개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갈등과 조절이 긍정적인 관계라는 것은 갈등을 통해서 현재 자신이 직면한 상황에 의존적이 되어서 자신의 판단에 갈등을 반영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을 정리하면 DLPFC에서 일어나는 인지 조절은 상의하달방식의 기능을 가지며, ACC의 경우에는 피드백의 기능을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함의 -

* DLPFC와 ACC는 각각 다른 인지 조절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DLPFC와 ACC의 활성 관계(독립적인 기능이 아닌)에 따라서 현재 피험자가 (Stroop test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어떠한 사고 과정을 진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좋게 말해서 인간의 사고를 이해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Tag : acc, Cognitive Control, DLPFC, 신경과학, 인지갈등

[7절]착각

Posted 2008/02/11 11:44 by Tricassia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가 사물을 본다는 것은 무수히 많은 정보들을 받아들이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위의 figure는 우리의 시각에 수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우리는 어느 부분이 물이고, 어느 부분이 나무고, 하늘인지를 구분한다. 단순하게 색에 의한 망막 자극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시각 정보 이상으로 사물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게 된다.

신경과학에서는 수 많은 시각 정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대립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identification과 categorization이 그것이다. identification은 사물의 특징을 잡아내는 과정이고, categorization은 사물이 어떠한 종류인지를 분간해 내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는 매우 대립적인 관계로 분명하게 가르기 힘든 점이 있다.

당신이 위의 figure를 보면 항구라고 금방 알아채게 된다. 이것은 categorization이다. categorization은 feedback의 과정으로 설명이 되는데, 이는 '물'로 판단되는 데에, '보트'로 보이는 사물이 '선착장'으로 보이는 데에 묶여있는 것으로 보이며, 과거의 경험이나 사례로 볼 때 항구의 맥락에 포함된다고 판단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놓여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항구에서 '있을 법'한 맥락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정도 까지 갔다면 시각에서 처리하는 것이 아닌 이성적 과정이 사물을 분류하는데 관여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identification은 사물의 특징적인 면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위의 figure에서 보트의 옆 면은 흰색이다라는 것은 그 보트만의 특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feedforward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이제 이 두 가지 특징에 대한 고찰을 해 보겠다.

어느 날 TV로 축구 경기를 보고 있는데, 짧은 머리의 선수가 매우 거친 플레이를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자. 처음엔 그 선수는 단지 축구 선수로서의 category에 포함되면서 짧은 머리라는 identification이 주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러 경기를 보는 동안 짧은 머리를 한 다른 여러 선수들 역시 거친 플레이를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면, 나는 충분히 짧은 머리 축구 선수는 거친 플레이를 즐겨 한다는 것을 잠정적으로 의식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후에 짧은 머리 축구 선수가 굳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지 않게 되더라도 나는 으레 거친 플레이를 할 것 처럼 기대한다. 이것은 내 스스로 짧은 머리 축구 선수는 거친 플레이를 즐겨한다는 category를 새로이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즉, 기존의 identification이 categorization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위의 가상의 예시처럼 무엇인가를 categorization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categorization을 하게 되는 것일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편하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뇌는 신체의 각 부위에서 전달되는 모든 감각의 정보들을 처리하고 있는데, 만일 해당 자극 정보에 대해서 categorization이 되어있지 않다면 일일이 모든 것에 주의를 집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categorization이 잘 형성되어 있다면, 우리의 뇌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작업에 더 몰두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즉, 현재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면서 다른 일에는 집중하지 않을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categorization의 장점이 곧 단점이 되는 경우도 있다. 제목에서 언급한 것 처럼 착각을 하는 경우인데, 우리의 사고 처리 과정에 feedback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 과거의 경험이나 생각에 영향을 받아 현재 받아들이고 있는 감각 정보들을 본질과는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남게 된다.

이제, 처음의 figure를 다시 관찰해 보자.

시각 정보를 통해서 우리는 이것이 매우 사실적으로 느끼기 쉽기 때문에 사진이라는 caterogy에서 figure를 관찰하고 인식하게 된다.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위의 figure는 유화이다. 즉, 극사실주의에 입각하여 그린 그림으로, 마치 우리로 하여금 실제 풍경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추가로 identification과 categorization의 관계를 조금 더 고찰하면 우리의 마음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힌트를 최근에 접하게 되었다. 다음 장에서는 이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극사실주의 유화에 관심이 있다면 오른쪽 링크의 'Raphaella Spence'로 가서 작가 중에 찾아보면 극사실주의 작품을 더 볼 수 있다.

- 7절 -

Tag : categorization, identification, 시각, 신경과학

[6절]By physical coherence/ For perception

Posted 2007/11/15 14:51 by Tricassia
우리가 판단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지이며, 우리 자신의 특징이다.

라는 말을 의심할 수 있는가?

우리는 외부의 자극을 해석하고 그에 대해서 생각하며, 판단한다. 외부의 자극을 통해 기본적인 처리 과정을 거쳐 뇌에서 다룰 수 있는 신호로 변환되고,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사고하게 된다. 거기에는 많은 구조들이 있을 수 있으나, 기본적인 것은 바로 외부 자극이 1차적으로 뇌의 신호로 변환되고, 이것을 효율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 특정 체계를 가지고 뇌가 계산하게 된다. 그 계산 과정에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계산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판단하게 되는 데에 크리티컬한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을 인위적으로 자극하게 되면 판단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인과적 단계를 생각할 수 있다. 인과적 단계를 통해 결국 뇌의 전기적 신호가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우리의 판단이 우리 자신의 의지이며, 특징이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외부 자극에서 계산 과정을 통해 마음에 이르기 까지 과정을 명확하게 하게 된다면,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조작할 수 있는 스킬을 가지게 되면, 타인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른바 가상 경험이 가능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뇌 수술 도중에는 환자가 의식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계속 말을 거는데, 뇌의 특정 부분에 자극이 되면,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환자가 있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같은 부위를 자극하면 다시 같은 과거의 일이 떠오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특정 부분의 자극으로 하여금 우리의 사고 과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고, 결국 우리의 고유한 특징을 가지게 하는 사고 영역이 인위적인 조작과 결합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사과를 매우 좋아하고, 딸기는 사과보다는 덜 좋아한다고 하자. 그런데 딸기를 좋아한다는 선호도를 결정짓는 부분의 뇌의 신경 세포 주위의 전기 포텐셜을 약간 높여준다면, 조그마한 summation에도 활동전위가 되어 선호도가 증가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를테면, 이상하게 딸기가 매우 맛있어 졌다든지, 딸기를 먹고싶다든지 하는 마음의 변화를 인위적 조작으로 얻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딸기의 선호도에 대한 ROI를 찾는 것이 신경 세포 주위에 전기 포텐셜을 높이는 것 보다 더 힘든 일이라는 것은 다른 문제로 두자.)

생각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신경 세포 구조가 있음직 하다. 가중치라는 것이 바로 인위적 조작에서 보는 전기 포텐셜을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중치 신경 세포. 있음직하다.

- 6절 -

Tag : 고유체, 구성주의, 생각, 신경과학

[5절]인지갈등과 어려움의 관계

Posted 2007/10/05 12:01 by Tricassia

인지갈등과 어려움을 다루기에 앞서서 앎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지갈등이라는 것은 자신이 구성하고 있는 지식 체계와 새로이 접하는 현상과의 불일치로서 설명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앎이라는 것은 주변의 환경에 대해서 이해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다고 한다면, 그 '무엇'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과 관계된 사건이나 인과관계에 대해서 짜임새있게 구성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구성은 자신의 의식으로도 가능하겠지만, 많은 부분이 무의식적으로 이뤄진다. 앞의 [2절]에서 언급한 사회구성주의적 특성을 앎과 연결해 본다면, 자신이 특정 내용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그에 대해서는 자신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미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비록 그렇게 알고 있는 앎이 실제의 앎과 다를지라도 자신의 일생에 있어서 경험한 것에 비추어 보게되면 매우 논리적인 구성인 경우가 많다. 이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논리적인 전개로 이뤄진 것이므로... 비록 그 앎이 잘못된 것일지라도)

이제 인지갈등(cognitive conflict)에 대해서 다뤄보자. 인지갈등은 자신이 현재 생각하고 있는 특정 대상에 대한 앎이 지각하고 있는 현상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한다고 본다. 이러한 인지갈등은 앎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지갈등을 경험하는 것은 뇌가 많이 성장하고 경험이 많으면 점점 강해진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장하면서 세계에 대한 뚜렷한 관점이 형성되며, 이 세계에 대한 인식론적, 존재론적 신념이 고착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와 현재 자신이 지각하고 있는 경험이 다르거나 설명하지 못하게 되면,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렇듯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보게 하는 동기는 바로 인지갈등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다.

[4절]에서 언급했듯이 뇌의 활동은 다양한 해부학적 기관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인지갈등을 지각하면, 그것은 단순하게 대뇌피질(정확하게는 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에서만 이뤄진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글에서 말하고자하는 어려움에 대한 관점이다. 어렵다는 것은 자신이 불일치 상황을 지각했거나, 그 이후 문제가 잘 풀어지지 않는 경우에 지각하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려움이라는 것은 감정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감정의 역할을 많이 담당하는 편도체에 DLPFC(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가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려움이라는 것은 인지갈등이 일어나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감정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DLPFC에서 편도체로만 신경 신호가 진행한다고 볼 수 없다. 해부학적으로 편도체가 포함된 변연계에서 대뇌피질에 이르는 신경다발은 대뇌에서 변연계로 뻗은 신경다발보다 굵다고 알려져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기본적인 생체적 기능으로부터 이성을 담당하는 대뇌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을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매우 감정적으로 격정적인 상태에서 우리가 논리적인 해석이나 차분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마치 매우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전개 같으나, 어딘가에 허점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뇌의 사고과정은 아직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 5절 -

Tag : 구성주의, 생각, 신경과학, 어려움, 인지갈등

[4절]Consciousness

Posted 2007/09/18 16:29 by Tricassia
*About consciousness

  우리의 의식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외부의 감각적 자극이 뇌의 몇몇의 부분에 도달하게 되고, 이것이 다른 부위에 전달되면서 우리는 외부의 자극을 의식하고 판단하게 된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의식이라는 것이 일종의 신경 신호의 흐름과 비슷하게 둔다고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단순한 '생각'을 좀 더 면밀하게 보는 관점이라고 본다.

  감각에 의한 뉴런의 전기적인 신호가 뇌의 감각신경계를 담당하는 해부학적 기관에 전달되면, 그 전기적인 신호를 받은 뇌는 그 신호를 분석하게 되는데, 이 분석은 바로 태어나서 여태껏 살아오면서 경험한 사건, 기억, 추억 등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사람에 따라 같은 자극도 다양하게 분석된다. (여담으로 이것은 교육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사회 구성주의와 매우 유사한 맥락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오래 된 주장이 이렇게 신경과학적 관점과 유사성을 보인 다는 점으로 보았을 때, 그 당시의 사회학자의 통찰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이렇게 분석된 신호는 점점 뇌의 다양한 부위로 퍼져나가면서 의식에 영향을 주게 된다고 본다. 그리고 그 의식은 기존의 경험과 현재 들어오고 있는 분석된 신호를 가지고서 새로운 지식을 형성하거나, 기존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바를 변형시키기도 한다. 또한 초기 신호로부터 신호를 분석하는 과정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 (한 과학자가 상이 거꾸로 맺히는 안경을 착용하고 생활하다보니 나중에는 자전거도 탈 수 있게 되었다는 사례가 있다. 이러한 사례는 자극 신호를 분석하는 체계도 변화가 가능함을 알려주는 좋은 예시이다.)

  앞의 두 가지 관계는 모두 우리의 이성적인 측면에 국한되어 전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감정을 가진 동물이다.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나 신체의 기초적 활동에 기인하는 기관이 많이 있는 변연계(이는 조금 더 공부 해 보아야 할 듯 하다.)가 우리의 이성적 활동에 영향을 준다.

  감정적으로 매우 고조된 사람의 이성적 판단과 차분한 사람의 이성적 판단의 질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이러한 점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고 자처하여도, 감각체계가 우리의 이성체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직도 우리의 뇌는 분명하게 밝혀져 있는 상태가 아니다. 지식이란 무엇이며, 기억이란 무엇인가? 뇌의 부위가 활성화 된다는 것이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는가? 부정적인의미를 가지는가? 이에 대한 과학적이고, 타당한 연구 결과가 아직 없다. 앞으로 많은 연구가 이러한 문제를 규명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 문제의식이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연구문제 중의 하나이다.

- 4 절 -

Tag : 과학, , 사회적 동물, 생각, 신경과학

[2절]유일한 '나'

Posted 2007/06/04 10:50 by Tricassia

사회적 동물

생각을 하는 존재(1절)로서 나는 외부의 자극에 영향을 받아 뇌의 어디선가 변화가 반드시 일어난다.

태아일 때 부터 뇌가 형성되면서 나의 감각 신경을 자극한 외부의 영향이 뇌를 형성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뇌가 생물학적으로 성장하면서 받은 자극에 의해 나의 지식이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로지 '나'라는 것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오로지 '나'라는 것은 순전히 외부에서 왔다. 그렇다면 고유체로서 '나'라는 것은 내가 성장한 주변 환경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타인에게 "너는 A도시의 B 학교야."라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처럼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겪은 모든 경험이 자극이 되어 사고를 형성한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그 사람이 처했던 상황에 그 사람의 성격이나 본질을 부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온전한 경험체이다.' 라는 것이 솔직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 근거를 둔다면 '내재적'이라는 말은 불가능한 표현이다. 나의 모든 것은 외부에서 왔기 때문이다.

관점을 돌려, 내재적인 사고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외부의 자극을 통해 형성한 사고가 무언가 미스테리한 과정을 거쳐 오로지 '나'라는 것으로 승화(!) 되었다고 해야하는가?

- 2 절 -

Tag : 고유체, , 사회적 동물, 생각, 신경과학, 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