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절]착각

Posted 2008/02/11 11:44 by Trica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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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물을 본다는 것은 무수히 많은 정보들을 받아들이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위의 figure는 우리의 시각에 수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우리는 어느 부분이 물이고, 어느 부분이 나무고, 하늘인지를 구분한다. 단순하게 색에 의한 망막 자극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시각 정보 이상으로 사물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게 된다.

신경과학에서는 수 많은 시각 정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대립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identification과 categorization이 그것이다. identification은 사물의 특징을 잡아내는 과정이고, categorization은 사물이 어떠한 종류인지를 분간해 내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는 매우 대립적인 관계로 분명하게 가르기 힘든 점이 있다.

당신이 위의 figure를 보면 항구라고 금방 알아채게 된다. 이것은 categorization이다. categorization은 feedback의 과정으로 설명이 되는데, 이는 '물'로 판단되는 데에, '보트'로 보이는 사물이 '선착장'으로 보이는 데에 묶여있는 것으로 보이며, 과거의 경험이나 사례로 볼 때 항구의 맥락에 포함된다고 판단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놓여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항구에서 '있을 법'한 맥락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정도 까지 갔다면 시각에서 처리하는 것이 아닌 이성적 과정이 사물을 분류하는데 관여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identification은 사물의 특징적인 면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위의 figure에서 보트의 옆 면은 흰색이다라는 것은 그 보트만의 특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feedforward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이제 이 두 가지 특징에 대한 고찰을 해 보겠다.

어느 날 TV로 축구 경기를 보고 있는데, 짧은 머리의 선수가 매우 거친 플레이를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자. 처음엔 그 선수는 단지 축구 선수로서의 category에 포함되면서 짧은 머리라는 identification이 주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러 경기를 보는 동안 짧은 머리를 한 다른 여러 선수들 역시 거친 플레이를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면, 나는 충분히 짧은 머리 축구 선수는 거친 플레이를 즐겨 한다는 것을 잠정적으로 의식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후에 짧은 머리 축구 선수가 굳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지 않게 되더라도 나는 으레 거친 플레이를 할 것 처럼 기대한다. 이것은 내 스스로 짧은 머리 축구 선수는 거친 플레이를 즐겨한다는 category를 새로이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즉, 기존의 identification이 categorization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위의 가상의 예시처럼 무엇인가를 categorization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categorization을 하게 되는 것일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편하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뇌는 신체의 각 부위에서 전달되는 모든 감각의 정보들을 처리하고 있는데, 만일 해당 자극 정보에 대해서 categorization이 되어있지 않다면 일일이 모든 것에 주의를 집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categorization이 잘 형성되어 있다면, 우리의 뇌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작업에 더 몰두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즉, 현재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면서 다른 일에는 집중하지 않을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categorization의 장점이 곧 단점이 되는 경우도 있다. 제목에서 언급한 것 처럼 착각을 하는 경우인데, 우리의 사고 처리 과정에 feedback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 과거의 경험이나 생각에 영향을 받아 현재 받아들이고 있는 감각 정보들을 본질과는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남게 된다.

이제, 처음의 figure를 다시 관찰해 보자.

시각 정보를 통해서 우리는 이것이 매우 사실적으로 느끼기 쉽기 때문에 사진이라는 caterogy에서 figure를 관찰하고 인식하게 된다.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위의 figure는 유화이다. 즉, 극사실주의에 입각하여 그린 그림으로, 마치 우리로 하여금 실제 풍경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추가로 identification과 categorization의 관계를 조금 더 고찰하면 우리의 마음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힌트를 최근에 접하게 되었다. 다음 장에서는 이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극사실주의 유화에 관심이 있다면 오른쪽 링크의 'Raphaella Spence'로 가서 작가 중에 찾아보면 극사실주의 작품을 더 볼 수 있다.

- 7절 -

Tag : categorization, identification, 시각, 신경과학

[6절]By physical coherence/ For perception

Posted 2007/11/15 14:51 by Tricassia
우리가 판단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지이며, 우리 자신의 특징이다.

라는 말을 의심할 수 있는가?

우리는 외부의 자극을 해석하고 그에 대해서 생각하며, 판단한다. 외부의 자극을 통해 기본적인 처리 과정을 거쳐 뇌에서 다룰 수 있는 신호로 변환되고,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사고하게 된다. 거기에는 많은 구조들이 있을 수 있으나, 기본적인 것은 바로 외부 자극이 1차적으로 뇌의 신호로 변환되고, 이것을 효율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 특정 체계를 가지고 뇌가 계산하게 된다. 그 계산 과정에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계산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판단하게 되는 데에 크리티컬한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을 인위적으로 자극하게 되면 판단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인과적 단계를 생각할 수 있다. 인과적 단계를 통해 결국 뇌의 전기적 신호가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우리의 판단이 우리 자신의 의지이며, 특징이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외부 자극에서 계산 과정을 통해 마음에 이르기 까지 과정을 명확하게 하게 된다면,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조작할 수 있는 스킬을 가지게 되면, 타인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른바 가상 경험이 가능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뇌 수술 도중에는 환자가 의식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계속 말을 거는데, 뇌의 특정 부분에 자극이 되면,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환자가 있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같은 부위를 자극하면 다시 같은 과거의 일이 떠오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특정 부분의 자극으로 하여금 우리의 사고 과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고, 결국 우리의 고유한 특징을 가지게 하는 사고 영역이 인위적인 조작과 결합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사과를 매우 좋아하고, 딸기는 사과보다는 덜 좋아한다고 하자. 그런데 딸기를 좋아한다는 선호도를 결정짓는 부분의 뇌의 신경 세포 주위의 전기 포텐셜을 약간 높여준다면, 조그마한 summation에도 활동전위가 되어 선호도가 증가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를테면, 이상하게 딸기가 매우 맛있어 졌다든지, 딸기를 먹고싶다든지 하는 마음의 변화를 인위적 조작으로 얻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딸기의 선호도에 대한 ROI를 찾는 것이 신경 세포 주위에 전기 포텐셜을 높이는 것 보다 더 힘든 일이라는 것은 다른 문제로 두자.)

생각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신경 세포 구조가 있음직 하다. 가중치라는 것이 바로 인위적 조작에서 보는 전기 포텐셜을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중치 신경 세포. 있음직하다.

- 6절 -

Tag : 고유체, 구성주의, 생각, 신경과학

Maze

Posted 2007/11/15 14:26 by Tricassia


Choice and Concentration

From Granado Espada

Tag : 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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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2007/11/09 11:41 by Tricassia


빠른 리듬
+
경쾌함
+
열정


From Granado Espada

 

Tag : 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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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2007/11/09 11:20 by Tricassia



푹 빠졌었던...

From Granado Espada




Tag : 몰입

[5절]인지갈등과 어려움의 관계

Posted 2007/10/05 12:01 by Tricassia

인지갈등과 어려움을 다루기에 앞서서 앎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지갈등이라는 것은 자신이 구성하고 있는 지식 체계와 새로이 접하는 현상과의 불일치로서 설명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앎이라는 것은 주변의 환경에 대해서 이해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다고 한다면, 그 '무엇'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과 관계된 사건이나 인과관계에 대해서 짜임새있게 구성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구성은 자신의 의식으로도 가능하겠지만, 많은 부분이 무의식적으로 이뤄진다. 앞의 [2절]에서 언급한 사회구성주의적 특성을 앎과 연결해 본다면, 자신이 특정 내용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그에 대해서는 자신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미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비록 그렇게 알고 있는 앎이 실제의 앎과 다를지라도 자신의 일생에 있어서 경험한 것에 비추어 보게되면 매우 논리적인 구성인 경우가 많다. 이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논리적인 전개로 이뤄진 것이므로... 비록 그 앎이 잘못된 것일지라도)

이제 인지갈등(cognitive conflict)에 대해서 다뤄보자. 인지갈등은 자신이 현재 생각하고 있는 특정 대상에 대한 앎이 지각하고 있는 현상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한다고 본다. 이러한 인지갈등은 앎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지갈등을 경험하는 것은 뇌가 많이 성장하고 경험이 많으면 점점 강해진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장하면서 세계에 대한 뚜렷한 관점이 형성되며, 이 세계에 대한 인식론적, 존재론적 신념이 고착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와 현재 자신이 지각하고 있는 경험이 다르거나 설명하지 못하게 되면,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렇듯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보게 하는 동기는 바로 인지갈등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다.

[4절]에서 언급했듯이 뇌의 활동은 다양한 해부학적 기관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인지갈등을 지각하면, 그것은 단순하게 대뇌피질(정확하게는 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에서만 이뤄진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글에서 말하고자하는 어려움에 대한 관점이다. 어렵다는 것은 자신이 불일치 상황을 지각했거나, 그 이후 문제가 잘 풀어지지 않는 경우에 지각하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려움이라는 것은 감정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감정의 역할을 많이 담당하는 편도체에 DLPFC(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가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려움이라는 것은 인지갈등이 일어나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감정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DLPFC에서 편도체로만 신경 신호가 진행한다고 볼 수 없다. 해부학적으로 편도체가 포함된 변연계에서 대뇌피질에 이르는 신경다발은 대뇌에서 변연계로 뻗은 신경다발보다 굵다고 알려져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기본적인 생체적 기능으로부터 이성을 담당하는 대뇌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을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매우 감정적으로 격정적인 상태에서 우리가 논리적인 해석이나 차분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마치 매우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전개 같으나, 어딘가에 허점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뇌의 사고과정은 아직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 5절 -

Tag : 구성주의, 생각, 신경과학, 어려움, 인지갈등

Just fun

Posted 2007/09/27 11:43 by Tricassia

님은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로 실수가 적고 자신의 일에 대하여 자부심이 강하므로 자존심에 상처 받는 일을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형으로 공무원이나 은행원, 관료에 적합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후하고 남에게는 인색하며 과단성이 부족하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주위에 많지 않고 일에 몰입 하기 보다는 생색내는 일을 선호하는 전형적인 문관 스타일입니다. 한편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면은 있지만 스케일은 작은 편이며 본인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하여 때로 무책임한 행동과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 님은 기본적으로는 조용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으나 자아가 강하여 남의 간섭이나 지시를 받는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보수적인 성격으로 수비 본능이 강하고, 겉으로는 잘 표현하지는 않으나 고집도 무척 센 편입니다. 윗사람의 지시도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드러내놓고 "아니오"라고는 하지않지만 돌아서서 자기 고집대로 하는형입니다.

이제까지 이야기한것은 님의 기본적인 성격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쉽게 잘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성격과 개성이 있습니다. 님에게는......  

밖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은근한 고집과 뚜렷한 자기주장 있으며 한번 마음 먹은 것이라면 묵묵하게 관철해 나가며 자존심이 강한 성격

그때 그때의 분위기에 잘 맞춰 잘 놀기도 하고 때때로는 한없이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는 성격  

무척 예민하고 감정의 기복이 있고, 사소한 일에도 신경이 곤두서기도 하여 심하면 주위 사람을 불편하게도 만드는 성격

겉보기와는 달리 의외로 대담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상식을 초월한 생각속에 빠져들기도 하는 성격

정이 많고 남들과 되도록이면 잘 지내고 싶어하는 형으로, 이성에 대한 관심 또한 대단히 높은 성격

조용하지만 그 정반대로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변화를 추구하고 낯선 것이나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

현실의 상황이 어떻든지 절대로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보다 나은 것을 추구하게 되고 그 결과가 만족 스럽지 못하면 정신적인 갈등을 겪게되어 심하면 그것이 누적되어 돌발적인 행동을 할수도 있는 성격

가족에 대한 사랑이 깊고 논리적인 사고가 뛰어나 사리의 분별이 명확하며 새로운 것을 빨리 적응하고 익혀 다른 사람을 능가할 수 있는 능력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단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하면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추진하는 성향이 강하므로, 때때로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는 성격 등이 숨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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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읽을 때 마다 흥미를 느낀다. 현재의 내 상황에 맞춰보고 앞으로의 일을 상상해본다. 하지만 이것을 단지 즐기는 것일뿐... 나의 온전한 모습은 아니다.

Tag : , 운세

[여담]2006년 4월 28일 생각

Posted 2007/09/21 10:04 by Tricassia

'참과 거짓에 대한 사색'

내가 어떤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은 그것이 나의 판단 기준에 추호도 의심이 없을 때 비로소 참이 된다.

그런데 현재 내가 배우고 있는 여러 과학적 지식들은 나 역시 명쾌한 설명을 하기 힘들다. 이에 나는 항상 거짓의 명제로 일관하는 삶을 살고 있다.

추가로, 진실된 참이라는 것을 말할 수 없지만, 내면적 참이라는 것은 가능하다. 내면적 참이라는 측면에서 솔직히 나는 내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다는 명제에 대해 거짓 명제라고 판단하게 된다.

- 내면적 참에 이르는 길은 매우 힘들고 고단하다.

ps1. 2007년9월21일 현재에도 나는 아직 참의 명제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ps2. 진실된 참 = original truth의 의미로 바꾸면 더 정확한 표현이 되겠다.

Tag : 거짓, , 생각,

[4절]Consciousness

Posted 2007/09/18 16:29 by Tricassia
*About consciousness

  우리의 의식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외부의 감각적 자극이 뇌의 몇몇의 부분에 도달하게 되고, 이것이 다른 부위에 전달되면서 우리는 외부의 자극을 의식하고 판단하게 된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의식이라는 것이 일종의 신경 신호의 흐름과 비슷하게 둔다고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단순한 '생각'을 좀 더 면밀하게 보는 관점이라고 본다.

  감각에 의한 뉴런의 전기적인 신호가 뇌의 감각신경계를 담당하는 해부학적 기관에 전달되면, 그 전기적인 신호를 받은 뇌는 그 신호를 분석하게 되는데, 이 분석은 바로 태어나서 여태껏 살아오면서 경험한 사건, 기억, 추억 등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사람에 따라 같은 자극도 다양하게 분석된다. (여담으로 이것은 교육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사회 구성주의와 매우 유사한 맥락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오래 된 주장이 이렇게 신경과학적 관점과 유사성을 보인 다는 점으로 보았을 때, 그 당시의 사회학자의 통찰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이렇게 분석된 신호는 점점 뇌의 다양한 부위로 퍼져나가면서 의식에 영향을 주게 된다고 본다. 그리고 그 의식은 기존의 경험과 현재 들어오고 있는 분석된 신호를 가지고서 새로운 지식을 형성하거나, 기존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바를 변형시키기도 한다. 또한 초기 신호로부터 신호를 분석하는 과정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 (한 과학자가 상이 거꾸로 맺히는 안경을 착용하고 생활하다보니 나중에는 자전거도 탈 수 있게 되었다는 사례가 있다. 이러한 사례는 자극 신호를 분석하는 체계도 변화가 가능함을 알려주는 좋은 예시이다.)

  앞의 두 가지 관계는 모두 우리의 이성적인 측면에 국한되어 전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감정을 가진 동물이다.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나 신체의 기초적 활동에 기인하는 기관이 많이 있는 변연계(이는 조금 더 공부 해 보아야 할 듯 하다.)가 우리의 이성적 활동에 영향을 준다.

  감정적으로 매우 고조된 사람의 이성적 판단과 차분한 사람의 이성적 판단의 질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이러한 점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고 자처하여도, 감각체계가 우리의 이성체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직도 우리의 뇌는 분명하게 밝혀져 있는 상태가 아니다. 지식이란 무엇이며, 기억이란 무엇인가? 뇌의 부위가 활성화 된다는 것이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는가? 부정적인의미를 가지는가? 이에 대한 과학적이고, 타당한 연구 결과가 아직 없다. 앞으로 많은 연구가 이러한 문제를 규명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 문제의식이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연구문제 중의 하나이다.

- 4 절 -

Tag : 과학, , 사회적 동물, 생각, 신경과학

[Review] 만들어진 신

Posted 2007/09/10 10:39 by Tricassia

- 도킨스에게 흔쾌히 도발당하기 -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만들어진 신』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리리라는 것은 익히 예견된 일이었다. 단지 그의 이름값 덕은 아니다. 그보다는 금세기 전환기에 옴진리교와 9ㆍ11처럼 종교가 얽힌 큰 사건들이 속속 터지면서 종교에 대한 비판적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 동안 이런 종류의 책이 여럿 나왔고, 『만들어진 신』도 그 중 하나다. 그 인기는 실로 대단해서 심지어 과학서와 인문서가 홀대받는 국내에서조차 가히 열풍이라 할 정도로 많이 읽히고 있다. 아마도 국내에서 그 인기는 사학법 논의, 종교인 과세 논쟁, 이랜드 분규,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처럼 종교, 특히 개신교가 연루된 일련의 사건이 낳은 효과인 듯하다.

  그런데 좀 의아한 구석이 있다. 사실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이 태반인 책인데 왜 이렇게 인기인 걸까?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 책이 방대한 인용과 뛰어난 편집의 산물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이 책의 토대, 즉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든 것이라는 무신론 명제는 19세기 유럽 사상가들이나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이오니아 학파에게서도 익히 들을 수 있었던 말이다(포이어바흐, 『종교의 본질에 관하여』).

  철학이나 상식을 동원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던 시도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리는 3장의 논의도 다른 이들의 기존 작업에서 더 나아가지는 못한다(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또 황당한 창조과학에 대한 대안으로 각광받는 어설픈 지적설계 이론에 대한 4장의 비판 역시 다른 이들이 제기했던 기존 비판과 그리 다르지 않다(호트, 『다윈 안의 신』, 키처, 『과학적 사기』).

  더 있다. 여자와 아이 심지어 가축까지 학살하는 정복 전쟁과 여성, 성적소수자, 장애인, 타민족, 타종교에 대한 차별로 가득한 성서 내용에 대한 7장과 8장의 비판 역시 기독교 혐오주의자나 혁신적 기독교인 양 진영에서 줄곧 다루어 온 소재다(스퐁, 『성경과 폭력』).

  물론 독창적인 부분도 많다. 도킨스 애독자에게는 좀 낡은 이야기겠지만, 어쨌든 자연선택과 밈(유전적 방법이 아닌, 특히 모방을 통해 전해지는 문화의 요소)이라는 진화론적 원리로 종교의 출현을 설명하는 시도는 제법 설득력이 있다(5장). 또 도킨스가 책 전반에서 내내 반복하는 말, 즉 선택권이 없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정신적 학대라는 경고는 미래 세대에 대한 그의 애정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무신론적 반종교주의자이기는 하지만, 도킨스가 종교를 마냥 비난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비록 수가 적기는 하지만, 어쨌든 깨어있는 종교인들에게는 존중을 표한다. 그가 비난하는 대상은 존중할만한 데가 별로 없는 나머지 대부분의 종교인들이다. 도킨스는 그들에게 대결의 도전장을 던진다. 당신들이 종교적이라고? 좋다! 누가 더 종교적인지 견주어보자. 종교가 없으면 도덕이 무너진다고? 좋다! 과연 그런지 따져 보자.

  또 그는 종교를 빙자해 저질러진 악행들을 나열하면서 종교의 득과 실에 관한 대차대조표를 작성한다. 결과는 자명하다. 종교는 도덕을 고양하기보다는 훼손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그는 도덕이란 인간의 상식과 양심에 뿌리박은 유산일 뿐 종교와는 무관하다고 결론짓는다(6장).

  독자에 따라서는 도킨스의 도발이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경전을 문자 그대로 믿고 자기 종교만이 진리라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특히 그럴 것이다. 물론 그들은 아예 이 책을 들추어 보지도 않거나, 혹시 읽더라도 애써 흠 잡으려는 불순한 의도로 읽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무신론자건 유신론자건, 종교가 있건 없건, 누구라도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더욱이 과학, 철학, 역사, 신학, 종교학을 넘나드는 박식함, 폭넓은 인용, 치밀한 논리, 맛깔스런 문장, 신랄하면서도 도를 넘지 않는 독설은 일단 책을 손에 쥐면 놓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도킨스 혼자의 산물이 아니다. 거기에는 진지하게 종교를 성찰했던 이들, 무신론자이건 종교인이건 인간과 종교의 진정성을 고민했던 이들의 목소리가 한껏 녹아있다. 그렇기에 달랑 이 책 한 권을 읽고 그 예리한 비판에 박수치며 마냥 우쭐대거나 기가 죽어 마냥 움츠린다면 책을 잘못 읽어도 한참 잘못 읽은 것이다.

  종교에 염증이 난 독자라면 도킨스가 사려 깊은 종교인들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종교적 신념을 지닌 독자라면 도킨스가 제기하는 도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 오만과 두려움을 떨치고 도킨스에게 흔쾌히 도발당하는 독자만이 도킨스와 더불어 또는 도킨스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얻게 될 것이다.

김윤성 교수 ,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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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공감.

종교인이라면 도킨스의 책을 멀리하기 보단 그로 부터 도발당해 봄 직 함이 어떨까...

Tag : , 종교, 타인